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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09
­지­­민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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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수식어들이 몇 가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6 반 걔, 모범생, 전교 3 등, 숙맥, 운동 잘하는 애 같은 것들. 뻔하다. 언제부터인가 챙이 있는 모자 그림을 보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 대답하는 사람들보다 뻔하다. 그러면서 누군가 양을 그려 보라고 했을 때 '양이 들어 있는 상자'를 그리지 않는 모순보다도 더 뻔하다. 어쭙잖은 상상력은 이미지라는 챙이 있는 선입견의 모자를 씌우고, 어린 것과 순수에 대한 동경은 양을 그려 달라고 하지 않은 아이에게도 상자를 그려 줘 버리곤 한다. 불만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모자는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내 얼굴을 가려 주었고,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또한 내 멋대로 결정할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선생님."



멀뚱히 창밖을 바라보던 흰 얼굴이 느릿하게 나를 돌아본다. 양호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멱살을 잡아 일으켜 입술을 붙이고, 남자의 흰 가운을 벌리며 허리를 끌어당겼다. 새파랗게 어린 새끼에게 멱살을 잡혀 일으켜져도, 그 흔한 인사 하나 없이 붙여 오는 몸뚱이에도, 남자는 나를 밀어낸다든가 하는 액션을 취하는 대신 그저 입술을 벌리고 내 무작스러운 혀 놀림을 무력하게 받아 내고만 있었다. 키스가 아니라기에는 세 치 혀가 난잡했고, 키스라기에는 남자는 이 모든 것들을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이 무력한 입술과 팔뚝이 문제였다. 갖은 무례에도 열리지 않았으면서 사람의 온기에는 쉽게 벌어지는 이 입술이 신경을 긁었다. 밀어내지도 않는 주제에 내 목에 한 번을 감겨 온 적이 없는 이 팔뚝이 사람을 미치게 했다.

남자의 셔츠 단추를 쥐어뜯듯 풀기 시작했다. 이 시간부터 이럴 생각으로 찾아온 건 아니었지만 새삼 심사가 뒤틀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가 제 셔츠에서 두 개의 단추가 풀리고 하나의 단추가 뜯어져 나갔을 때쯤, 작게 입을 열었다.



"그 애는?"



3 반의 그 계집애를 말하는 것일 테다. 몇 달 전엔가 얼굴이 예쁘장하다는 것을 제외하고 특별할 것이 없는 고등학생 여자애는 하굣길의 운동장에서 내게 '좋아한다.'는 고백과 함께 편지와 선물을 수줍게 내밀었다. 자기가 꽤 인기가 많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데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라면 쉽게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성가셨다. 앙큼한 짓을 해 놓고도 짐짓 수줍은 척 양 볼을 붉히는 이년이나, 별것도 아닌 일에 별스럽게 구는 구경꾼들의 관심 어린 눈빛이나.

받은 것들을 돌려주려던 차에 눈에 들어온 것은 저 멀리 창틀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흰 얼굴이었다. 언제나처럼 흰 머그잔에 반 샷만 넣은 아메리카노의 향을 맡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양호실의 커튼이 걷혀 있을 때는 나라는 불청객이 방문한 후의 잔향을 환기시킬 때를 제외하면 그때가 유일했으니까. 이유 모를 변덕이 끓었다. 어제도 자습 시간에 빠져나온 내 밑에서 맨가슴으로 다리를 벌리던 주제에 지나치게 말끔한 얼굴인 남자를 탓하기로 했다.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계집애의 손을 맞잡았다. 실없는 구경꾼들에게서 환호성인지 야유인지 모를 것이 터져나왔고,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살구색 커튼만이 창살 너머로 펄럭이고 있었다.

소꿉놀이는 길지 않았다. 계집애의 방 침대 위에서 세 개에 오천 원 하는 콘돔 한 박스를 쓰고 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는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는 뻔한 핑계로 간단하게 흙모래 밥상을 엎었다. 내내 순진한 척을 하던 계집애는 모멸감으로 빨갛게 물든 얼굴을 하고는 내 뺨을 갈겼지만 뒷소문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콧대 높고 여우 같은 년은 적당히 똑똑했고, 자신의 위신을 세우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역시나 며칠 지나지 않아 '박지민, 그 숙맥 새끼, 3 반 걔랑 자 보지도 못하고 벌써 차였다더라.'하는 이야기가 돌았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한들 굳게 닫혀 있는 양호실의 문턱은 넘을 수 없었던 것일까, 내 저급한 성정과 천박한 취향을 알고 있기에 듣고도 믿지 않은 것일까. 잘 모르겠다.



"내가 같은 년이랑 한 달 이상 만나는 거 봤어요?"



옅은 웃음과 함께 흘린 말에 남자의 입술이 다시 굳게 다물렸다. 침대 주위로 둘러진 흰 커튼을 걷고 남자를 밀어 눕히자 별다른 저항 없이 베개에 머리를 기대고는 열려 있는 커튼 사이를 빤히 쳐다본다. 남자는 항상 이 모양이고, 나는 항상 남자를 이해할 수가 없다. 커튼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남자와, 그걸 알아채고서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배려해 주지 않는 나.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부러 얼굴에 뿜어도 눈가를 작게 찡그릴 뿐 고개 한 번 돌리지 않는 남자와,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담배 연기를 잔뜩 머금은 입술로 키스까지 하고야 마는 나. 만나는 계집애가 없을 때만 남자의 다리 사이로 찾아드는 나와, 그걸 신경 쓰고 있으면서도 쓸데없이 주제 파악 하나는 확실해서 늘 무표정으로 일관해 버리는 이 남자.

흰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남자의 벨트에 손을 가져다 대자 상체를 바르르 떨면서도 허리를 살짝 들어 준다. 욕지기가 앞니까지 치고 올라와 이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뭐, 벗기기 쉬우라고? 씨발 년, 미친년, 좆같은 년, 이 개 같은 년! 결국 열이 뻗친 내가 거칠게 바지와 속옷을 벗­­겨 내리자 체념한 듯 감아 버리는 두 눈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흘렀다. 다 포기한 년이 또 포기할 게 있기는 한가 보네, 씨발. 어디에도 기대지 못하고 시트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하얗고 가느다란 두 손은 못 본 척하기로 했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양쪽 어깨에 걸쳐진 두 맨다리가 허공에서 오래도록 흔들렸다. 내가 안으로 들어섰을 때야 겨우 시트를 쥐었던 손이 내내 더 희게 질려만 갔다. 남자는 단 한 번도 아프다고 말하거나 내 목에 팔을 감아 주지 않았고, 나 역시 아프냐고 묻거나 남자의 마른 어깨를 안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남자의 거리는 도무지 좁혀질 줄을 모른다. 두 몸뚱이는 이렇게나 가까운데.



*



남자는 늘 그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종종 커튼이 걷힌 침대에 앉아 그런 남자의 무릎 위로 햇살이 내려앉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고는 남자와 닮은 양호실의 공기를 가르고 기어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남자는 학교 건물 내에서는 금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말리지 않고, 나는 남자가 나 때문에 양호실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오해를 받아 꼰대들에게 자주 혼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담뱃불을 끄지 않는다. 바깥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노는 소리가 들린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의 커튼을 모두 치고 그에게 키스했다. 남자는 꼼꼼하게 닫힌 베이지색 커튼을 빤히 쳐다보다 이내 눈을 감았다.

감긴 눈이 평온했다. 늘 시달리기만 하면서도 저런 얼굴을 하고 있다. 싫다는 말 한 번을 할 줄을 모르는 성녀의 앞에서 더러운 성정과 배덕감이 울컥 받쳤다. 입술을 떼자 나도 모르게 올라간 손이 남자의 뺨을 후려쳤다. 발갛게 부어오른 뺨과 돌아간 고개가 눈에 들어왔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손은 허공 어디에선가 맴돌 뿐, 남자의 뺨 언저리에도 닿을 줄을 모른다. 남자 또한 내 손찌검에 조금 놀란 눈을 하고서도 언제나 그랬듯이 내 운동화 앞축만 멀뚱히 바라본다. 한때는 남자가 내 얼굴보다 내 운동화의 생김새를 더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겹다, 우리."
"……."
"지긋지긋해요, 선생님."
"지민아."


아, 감상적으로 굴어 버렸다.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도 때린 적은 없었는데. 미쳤다, 박지­민. 말을 마치고 서둘러 돌아서려는 내 목에 남자가 팔을 감았다. 어정쩡하게 굽혀진 허리가 불편했다. 뒷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생소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선생님을 밀어내기는 싫었지만, 껴안을 자신도 없었다. 어정쩡하게 들린 상체가 불편했을 선생님도 굳이 나를 떼어 놓거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팔과 상체로도 나와 선생님은 잘도 한참을 그렇게 얽혀 있었다.



선생님은 비흡연자이면서도 늘 재떨이를 침대 옆 협탁의 가장 아래 서랍에 숨겨 두었고, 그 재떨이는 꼬박꼬박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나는 양호실에 들어설 때마다 습관적으로 문을 잠갔고, 선생님을 가장 안쪽의 침대로 밀어 넣곤 했다. 선생님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봐 주지는 않았지만, 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면 테이블 위에 미지근한 물 한 잔과 영양제 혹은 감기약을 한 알씩 올려 두었다. 나는 선생님의 옆얼굴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의 턱을 들어올리는 대신 운동화를 일주일에 한 번씩 빨기 시작했다. 극성을 부린다는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나는 기어코 운동화를 물에 적시고, 비누칠을 했다.

언제부터였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선생님도, 나도. 하지만 우리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는 것이 힘인지, 모르는 것이 약인지. 그래서 아는 것은 병이 되었고, 모르는 척은 독이 되었다. 나는 다시금 뱀의 혀로 이 사막에서 떠나기 위한 키스를 하며 선생님의 어깨를 쥐었고, 선생님은 장미의 가시가 돋친 팔뚝으로 내 목을 껴안으며 그저 잠든 것처럼 보이기 위해 눈을 감았다. 우리는 우리의 행성으로 돌아간다.



*



나는 장미가 어린 왕자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을 길들이고 작은 행성에 혼자 버려 둔 어린 왕자를 미워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어린 왕자를 독살해 준 뱀을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뱀은 장미에게 유리관 같은 것은 씌우지 않을 것이다.
뱀의 이빨이 늘상 장미의 꽃잎을 으깨고, 장미의 가시가 번번이 뱀의 혀를 찢어 놓더라도.



커튼이 나부끼는 창가 너머로 얕은 바람과 함께 장미 향이 스쳤다.
이 행성의 새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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